휴가 2일차.
아무 계획없이 남은 휴가는 많고 회사에 있기는 싫고 일도 어정쩡 하겠다 대뜸 휴가를 5일 가겠다고 했다. 휴가를 가더라도 남아있는 연차는 아직도 많다. 빼먹지 말고 한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올 해가 몇일 남지않은 지금 써버려야 한다는 강박에 조금 사로잡혀 날짜를 잡은 것도 있다. 휴가 수당을 주는게 아니라면 휴가는 빼먹지 말고 다 써야 한다 그게 직장에 대한 의리이고 나 스스로에 대한 선물이다.
휴가 2일째이지만 계획이 없었기에 아침부터 무엇을 할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집에 알려봐야 좋을게 없기에 출근하듯 집을 나서긴 했지만 어디로 갈지 계획은 없다. 어영부영 하는동안 문뜩 제작년 프리랜서 하는동안 자주갔던 스타벅스로 발길을 옴겼다. 조조 영화를 볼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한시간 가량 남아있고 기다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익숙한듯 커피를 받아들고 3층으로 올라섰다. 생각했던대로 이른 시간이라 나말고는 인기척 조차 느낄 수 없다. 아마도 앞으로 2시간은 나 혼자 이 넓은 공간을 쓰고 있으리라 예전에도 그랬던듯 말이다. 노트북을 켤까 읽던 소설책을 마저 읽을까 또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있다. 노트북을 켜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창가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침에 창가에서 사람들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어떻게 사는지 어디를 그렇게 가는지 관찰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패션이 비슷비슷 하다는 것과 내가 지금 트렌드와 다소 멀리 있는 아저씨 패션 같다는 점이 자각되었다. 역시 남자는 나이가 들 수록 오히려 더 잘 입고다녀야한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꼭!! 말이다. 지나가는 어린 남자 애들의 패션에 오히려 눈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헤어와 상의, 하의 신발까지 세세하게 보게된다. 패션에 관심이 없을 때 하나씩 하나씩 옷과 신발을 사다보면 어울리는 다른 옷과 신발이 없어 이 옷을 왜 샀나 싶을 때도 있기에 새로 산 옷들을 어떻게 입고 나가야 할지도 머리속에 대충 그려보아야 한다. 귀찮을 때 대충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나 상의와 어울리지 않는 바지등 대충대충 입고 다니다 막상 중요한 일에 입고갈 아이템이 없어 테러를 하고 다녔던 적이 몇번인지 내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럴 때마다 돈벌어서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아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으로 큼직큼직하게 필요한 것들은 꼬박꼬박 사 나간다. 그래야 나중에 더 큰 돈 안들이고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만큼은 입고다닐 수 있다. 어느정도 필요 아이템들은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코트가 차이나 칼라에서 옛날 스타일의 롱코트로 바뀌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패딩만 입게 된다. 코트를 겨울 지나기 전 사서 주구장창 입고 다녀야 겠다라고 다짐한 후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은 처음 읽었을 때 박진감 넘치고 긴박했었지만 읽다보면 그게 그거 같고 이야기를 어느정도 때려 맞춰보면 이제는 30%이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 그러다보면 책에서 흥미는 떨어지고 이게 재미있는지 없는지 분간도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눈은 자꾸 창밖으로 옴겨저 갈 뿐이다.
닫혀있던 상점들도 하나둘씩 알바생들이 나와 문을 열고 간판에 불을 켜고 청소 준비를 한다. 분주하게 쓸고 닦고 제품을 진열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택배를 받는다. 자영업자들의 아침은 직장인들보다 1~2시간 더 늦지만 더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기에 편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게 저마다 각기 살아온 나날과 살아갈 나날들이 다르기에 누가 더 편하다 좋다라고 말할 수 없다. 방학을 해서 그런지 쇼핑을 하거나 친구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대학생들도 눈에 띈다. 대부분은 가게 문을 열러 가거나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온 이들로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에 인구는 많아지고 택배 차들은 점차 사라져 간다. 밀물과 썰물이 들어왔다 빠지듯 시간에 맞춘듯 딱.딱.딱 하고 점차 길거리의 분위기가 변해가고 있다. 내가 있던 카페에도 어느덧 3명의 사람들이 어느제 자리를 차지하고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꺼내 공부를 하고 있다.
카페에서 책을 읽은 지 3시간이 흘렀다. 창밖 구경하랴 책보랴 거의 다 읽었어야 될 책 은 반밖에 읽혀 있지 않았다. 카페 안쪽은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둡고 창밖은 시선 빼앗길 곳이 많기에 참 난감 하다. 그래도 여유있게 몇 달만인가? 갑자기 여유가 찾아왔지만 어떻게 쓸지 몰라 난감해하는 꼴이라니 인생 참 더럽게 재미없게 사는듯싶다.
카페에 앉아 더 책을 읽기에 집중력의 한계라 생각되어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햄버거와 빵집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다 빵집으로 들어섰다. 역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녁에 가면 구경도 하지 못할 빵들이 많이 보인다. 그중에 기름에 튀긴 음식과 초코가 듬뿍박혀있는 빵 마지막으로 달콤한 크림이 들어있는 빵 3개를 계산한 후 아메리카노와 같이 흡입해 버렸다. 역시 먹는게 남는거다. 잠시 후면 저 무지막지하게 달달한 빵과 바삭바삭한 저 빵이 내 배속에 한데 어우러져 날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먹을 때, 씹을 때의 그 행복감을 위해 나는 더 천천히 턱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휴가를 업무처럼 생각해 다음 할일을 생각해 보건데 5시간이나 남아있다. 내년부터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기에 미리 패턴을 길들일겸 큰맘먹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내년 4월에 있을 필기 시험을 위해 마지막으로 고른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책이었다. 이제는 4월까지 총 4권의 책을 달달 봐야만 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이기에 꼭 해야만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나 스스로도 의문이다. 책을 계속해서 꾸준하게 보기는 하지만 공부와는 또 다르다. 모르는 내용을 계속해서 읽는 것과 한번 가볍게 읽고 넘어가면 되는 소설과는 와닿는 거 부터 다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설책 읽듯 한번 빠르게 읽은 후 다시금 정독을 해 볼 생각이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공부 그만할까 생각하다가도 열심히 매진해 수석으로 시험을 합격했다는 수기를 보면서 누구나 다 똑같은 생각을 하지만 누가 더 그 끈을 오래도록 집요하게 잡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더 받았기에 이번 4월까지 나를 잘 다독여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2시간만에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소설책 앞에서 어슬렁 거리지만 이내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벌써 휴가 하루를 다 쓴 기분이다. 업무시간으로 따지면 아직 3시간이 남았지만 다음에 하고자 할 만한 무언가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3시간동안 잠을 자고나서 휴가 두번째 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