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썸

맹뭉한 그녀 2

썩소천사 2018. 7. 17. 17:33

첫 식사 후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했지만 그런 자리는 오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기다리는 일 따위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습이기에 나처럼 정시 퇴근을 불가능 했다. 나는 거의 정시에 나갔기 때문에 같이 나갈일 또한 없었다.

 짬내서 밖깥 풍경이나 보며 쉬러갈 때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같이 바람이나 쐬자"라고 건넸고 그녀는 "그래요"하며 따라나섰다. 전 회사에서도 담배피러 나갈 때 복도등에서 마주치면 자주 따라 나섰다고 했다. 내 생각컨데 싫어서 일부러 피하는 사람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 정도다. 어찌보면 성격 참 둥글둥글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맹하기 그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지켜보면 알수있을까? 싶지만 모르겠다.

같이 이야기 하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점점 그녀의 정보도 쌓여갔다. 중복되는 내용이 많긴 하지만 회사, 알바, 친구, 집 소재를 가리지 않고 주재를 바꿔가며 대화를 나눴다. 내가 들었던 내용은 주제를 살짝 변경해주었고, 모르는 부분들은 점차 더 알아갔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그녀는 특정 상황에 대해 결과를 이야기 하는게 아닌 그 시점만을 이야기 했다.

 예로 친구 하나가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주말에 그 친구와 피자를 먹었다. 헌데 그 친구는 피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중에는 정말 그 친구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오히려 내가 되묻고 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겠다는 멍뭉한 표정을 짖는다. 그 모습이 바로 그녀의 매력 포인트인 것 같다.

  어느날은 같이 점심을 먹다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너는 네 생각에 성격이 활발한 것 같니 차분한 것 같니?" 보통 답이 바로 나오는데 자기도 모르겠단다. 그리고 3시간 뒤에 친구에게 물어보고 나에게 메신져로 답을 주었다. 더 웃긴건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출근 했더니 또 다른 이에게 묻고 또 다른 답을 알려주었다. 알다가도 모를 그녀다. 정말 아리송송하다.

 어느날 일이 애매하게 끝나 퇴근을 조금 늦게 했는데 기다렸던 것 처럼 그녀도 따라 일어났다. 누가보면 내가 로그아웃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무슨일로 오늘은 빨리가니?"라며 물었더니 "버스 시간을 놓쳤는데 뭐 지하철이나 다른 거 타고 가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다 자연스레 건물 앞 내 차앞으로 걸어가는데 따라온다. 태워다 준다는 말 한적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조수석 문을 열었고 그녀는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전 직장 과장이라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여친도 있는 사람이다. 다만 출장을 이곳으로 와서 주말만 여친을 만나러 간단다. 그녀와 이야기를 조금 오래한다 싶으면 그 과장이라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그날도 들어보니 지난주에도 봤는데 주말에 또 봤단다. 흠... 속으로 뭐지싶다. "내가 보기엔 과장이 너만 호감을 표시해주면 바로 환승이별 할 각 아니냐?" 라고 물으니 그러면 다시는 그 과장님 안만나죠 라며 대꾸한다. 남녀간에 그것도 회사에서 친해지긴 했는데 주 1회씩 만나고, 연락은 내 생각엔 3~4회 이상 하는 거 같은데 그러면 뭐 끝났지 너한테 관심이 있는거지라고 나는 정리가 되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있는 관계다 라고 정리가 되어있기에 의견차가 있어보였다.

 그러다 연애이야기로 다시 화재를 돌렸다. "너는 왜 연애 안하니?" 별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소개팅은 부담스럽고 그렇단다. 전 회사 과장이나 나나 똑같은 소리하는 아재들이라며 싸잡아 말한다. 어제 봤던 이와 오늘 봤던 이가 똑같은 소리를 해대니 그럴만 하다. 내가 보기엔 너에게 지금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남자 2명이야 멍충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 속에서는 대놓고 물어보고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할까 말까 애매하게 거리 두는것도 싫은데 라며 타이밍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사내연애로 이야기가 빠졌는데 어떻게 사귀는 사이끼리 사내연애를 하냐며 자긴 절대 안한다고 대못을 내 뼈에 때렸다. 그렇다 굳이 물어볼 이유가 방금 사라져버렸다. 그럼 오늘 나 따라 퇴근한건 뭥미 말 따로 마음 따로 유체이탈 화법인가? 그냥 우연히 겹쳤던 거라고 퉁치기로 했다. 나도 저녁 약속이 있었고 같이 밥먹을 각은 아니었기에 집앞에 내려만 주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이전과 다르게 오늘은 차에서 인사하고 내려서 또 인사도 하네 싶다. 또 금사빠인 내가 이런 우연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내일 부터는 정시퇴근모드로 다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