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무표정한 그녀

무표정한 그녀 3

썩소천사 2018. 9. 3. 21:21

점심 시간이 지나고 그녀에게서 톡이왔다.

"오늘 저 대리러 온다고 했죠?"

 내가 그랬었나? 어제 내가 "남자 친구가 매일 저녁 늦게 퇴근 때 대리러 오면 좋지 않아요?"라고 물어봤던 것을 매일 내가 대리러 간다고 이해한 것 같았다. 이건 뭐 듣고 싶은데로 들은거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네"라고 대답하기 보다 장난이 치고 싶었다.

"내가 그랬어? 나 그런말 한적 없는데?"

그리고 1분 뒤 "ㅋㅋㅋ 대리러 간다고 했죠 기억 잘 하고 있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글죠? 순간 너무 민망했잖아요!"

 대려다 줄 생각이 첨부터 있었기에 큰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오늘 출근하면서 너무 꽃단장을 하고 가신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도 면도하고 가려고 세면도구를 챙겨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애매했다. 회사에서 그녀 퇴근시간까지 있다가 가는 것도 뭐 쉬운 일은 아니고 겸사겸사 자격증 시험도 한달 남았겠다. 남아서 공부하고 가면 딱이겠다 싶기도 하지만 운동 시간이 없다는 것과 잠잘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건 연애가 시작되면 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작년 이맘 때 거의 비슷한 날짜에 만난 여성분과 2개월간 교재를 했었는데 그 때도 자격증 시험을 접수하고 나서 만난거라 공부도 연애도 어영부영해서 둘 다 놓치고 말았었다. 뭐 그녀는 사실 만난지 2주부터 고민을 했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책도 보고 노래도 듣고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는 건지 허비하는 건지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 허비하다가 그녀 병원으로 갔다. 주차장은 좁았고 다행히 시간이 늦어서인지 주차할 곳은 있었다. 날이 더우니 시동은 켜둔체 오래된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녀가 쫄래쫄래 옷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내 차로 오고있다. 블링블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화장이나 옷에 힘 좀 주고 왔을거라 생각했는데 목 늘어난 캐릭터 티에 구찌 가방과 청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차를 타는 순간 그녀를 보는데 내가 어제 그제 본 사람이 맞나 싶기도 하고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싶기도 하고 갑자기 호감의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3번째 보는건데 뭔가 아직도 많이 어색하다. 어제는 분명 반말도 하고 가볍게 스킨쉽도 했는데 이건 뭐지? 하는 그런 느낌? 설렘이 정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저녁이 부실하게 나왔다며 배가 고프다 했고 먹고 싶은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이미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이 있을텐데 다이어트 때문인지 자제하는 눈치였다. 결국 햄버거는 늦은 저녁 먹기 부담스럽고 카페에서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그녀는 음료는 주문하지 않았고 내 음료와 샌드위치만 그녀가 계산했다. 1층은 테이블이 적고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간에 공부하는 카공족 3명과 2커플만 있어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매일 봐서인가 아니면 오늘 유독 낯설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까의 충격때문인지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15분 걸린다는 샌드위치는 10분도 되지않아 나왔다. 1층에서 접시와 냅킨을 챙기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햄버거를 관찰하더니 덥썩 잡아 나를 보며 야무지게 잘 먹었다. 낯설었다. 왠지 모를 벌써 편해진 사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보고 있으면 민망하지 않냐는 내 질문에 민망하니까 좀 다른데 보고 있으라고 한다. 나는 창가에 비추는 그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풍경도 보고 그녀도 봤다. 먹는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거침은 없었다. 내숭은 전혀 없는 스타일로 보인다.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 착해요라고 꼭 말하는 것 같다. 그 표정마저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눈과는 다르게 표정은 뭔가 냉랭하고 생기가 없었다. 아마도 3교대 후유증으로 인한 것 같기도 했다. 

 카페에서 이야기는 가족관계에 대해 더 깊게 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가족과 부부가 된 사이지만 그렇게 내막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녀 가족 이야기와 내 가족 이야기를 조금 하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되고 사람들이 카페를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할 무렵 우리도 밖으로 나왔다. 차 시동을 켜고 음악을 틀었다. 이야기나 좀 하다고 들어가자 하였고 그녀도 그러자고 했다. 나랑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답은 이미 나온 것 같아 뭔가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막상 별로인 것 같다고 한 두 번 더 보고 생각하자거나 오늘 정리하자고 할지 모르는 일이다. 

"벌써 3번째 보는건데 나랑 사귀면 어떨 것 같아?"

라는 내 질문에 그녀는 뜸을 들였고, 내가 어디가 좋냐 뭐가 좋으냐 물었으나 나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착해서. 그리고... 그 다음 말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ㅋㅋㅋㅋㅋ 멍청한 생각이었다. 오히려 내가 준비가 안된 것 같았다. 오늘 첫 만남의 충격인가 연륜에서 오는 입바른 소리조차 그 때는 나오지 않았다. "좋아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아무말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기에 나는 그만 두기로 했다. 생각해보고 나중에 알려달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사귀냐 마느냐가 아닌 현실의 결혼에 대해 말했고 남자의 수입은 얼마정도를 원하는지 여자가 꼭 맞벌이 해야 하는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공유했다. 확실히 그녀도 결혼을 전재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전까지 이런 느낌은 있었었도 뭔가 분위기나 태도는 다른 여성과 또 달랐다. 무언가의 조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녀가 첨인듯 했다. 그동안의 여자들은 내가 입은 옷과 자동차 집을 가지고 결혼을 저울질 했다. 물론 나에게 큰 하자가 있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시 하는건 직장과 집이었다. 생각해보니 첫 만남에 그녀도 나에게 그 일은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결혼 적령기를 앞둔 남녀는 역시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직업? 집안? 성격? 외모 순간 나 또한 내가 그녀를 만나고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전 만남보다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 이야기만 해서인지 그녀는 연신 하품을 했다. 나 또한 피곤이 몰려왔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오빠라고 불렀다. 확실히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를 좀 더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게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이제는 심심찮게 반말과 스킨쉽을 한다. 그리고 집 앞에 내려 배웅할 때 처음으로 나를 뒤돌아 봤다. 그것도 2번씩이나 말이다. 뭔가 느낌이 쌔하면서도 확신에 차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내 마음이 갈팡질팡 하고 있다는데 있었다. 무언가의 매력에 빠져들 시점에 오히려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생각말고 천천히 그녀와의 연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집에 도착하자 피로는 엄청났고 그녀는 오늘도 빠른 카톡 종결을 했다. 나 또한 빠른 수면세계로 빠져 들고 싶어 씻고나서 바로 자리에 누웠다. 아마도 내일 아침은 눈 뜨기가 힘들거라는 것을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냉장고에 있는 홍삼을 다시 먹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