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무표정한 그녀

무표정한 그녀 13

썩소천사 2018. 9. 17. 11:27

퇴근 후 그녀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먼저 식당과 메뉴를 정해놓고 가는걸 선호하지만 그녀는 식당도 만나서 정하고 메뉴도 가서 정하는 편이다. 막상 만나서 물어보면 항상 우선순위는 정해져있다. 뭐가 다른거지? 이미 머리속에 정해둔 것을 미리 말해서 조율하면 되는데 항상 만나서 정하려고 했다. 막상 만나서 나는 이것을 먹고 싶다 말하면 그때서야 자기는 이게 먹고 싶다 말한다. "뭐지?"라는 생각이 메뉴를 정할 때마다 든다.
 어디 갈지를 정했고 특정 음식이 유명한 식당이어도 세부 메뉴를 먼저 정하는 것에 나를 오히려 신기하게 봤다. 대부분 여성들은 가기 전 무엇을 먹자고 말하며 기분이 들뜨고 신나했던 반면 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미 정해놓고 있으면서, 입 밖으로 꺼내질 않았다. 그리고 식당에 착석 했을 때 비로서 말했다. 왜 그러는 것일까? 식당도 그녀가 정했고 식당을 정했으면, 메뉴를 이미 생각하고 갔다는 말인데 그걸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냥 이기적인 건가? 뭐지? 나는 정했으니 너는 가서 정하라는 건가? 뭐 크게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점 또한 서로 다른점이라 누군가는 맞춰야 하는 문제였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1번으로 그 다음 그녀가 선호하는 메뉴를 2번째로 말하면 그녀는 항상 2번 또는 그 외의 3번을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웃긴게 그 전에 그녀는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오늘은 오빠가 먹고 싶은거 먹자!"라고 언급 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저녁 늦게 먹는 것에 대해서였다. 나는 저녁 9시 이후 술자리가 있을 때 제외하고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지만 그녀는 시간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먹고 바로 자는 것을 좋아했다.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었다. 술에 취하면 바지 단추가 터질 때까지 먹었다. 심지어 나는 앞에서 시늉만 하고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먹었다. 실로 엄청난 식탐이었다. 음식만 먹으면 좋으련만 술 또한 혼자서 잘 마셨다. 짠! 하고 마시고 술을 따라주자 바로 원샷을 보는 그녀였다.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호감이 반감되는 순간이었다. 연속 소주 원샷을 1병 마시는 동안 3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2잔 원샷을 해서였을까? 내가 먹다 남은 옥수수 덥썩 잡더니 듬성듬성 남은 옥수수를 찾아 뜯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울 수 있지만 2번의 제지에도 3번째 뜯어먹는 그녀를 마냥 사랑스럽게 볼 수 만은 없었다. 심지어 내가 먹기 좋으라고 뜯어놓은 옥수수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본인이 들고 먹는 재미가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실로 충격적이었다.

 식당에 가면 한가지 그녀의 습관이 있었는데 바로 휴지를 쓰는 방법이다. 그녀는 한입 먹고 나서 휴지를 꺼내 쓱 닦고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몇 번 먹다보면 테이블에는 흘린 음식물과 쌓인 휴지가 실로 엄청났다. 점점 쌓이고 쌓여 바닥까지 휴지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그 모습을 보는데 집에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방청소와 속옷 빨래까지도 엄마가 해준다고 했는데 결혼하면 어떨까?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잔잔한 파도처럼 나를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그녀가 화장실을 간 사이 테이블 아래까지 치우기는 그렇고 위에 놓인 음식물과 휴지를 작게 돌돌말아 한쪽에 치웠다. 하지만 금세 휴지는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기까지 냅킨통에 있는 냅킨을 거의 다 쓰고 가는 것 같았다. 
 여자를 만날 때 여러가지 면을 보지만 휴지를 쓰고 버릴 때 지켜본다. 그 사람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청소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을 것이다.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털털하다 정도로 결론이 나왔다. 그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그녀와 같이 살 경우 어떨까?라는 물음에 어느정도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결혼하면 바뀌겠지라는 가장 무서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