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그녀 1
올해는 무슨 날인가보다. 소개팅이나 선이 한달에 한번씩 들어온다. 10월 이후는 해줄 사람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우연찮게 부모님 가게 단골 손님이 나를 보고 맘에 드셨는지 1살 연하의 여자분을 소개해주셨다. 이미 내 연락처는 단골 아주머니에게 있는 상태였고, 여자분 의향을 물어보고 아주머니가 나에게 전화를 주신다고 했다. 엄마는 직장도 오래 다닐 수 있고, 맞며느리 감인데 인물은 별로라며, 아주머니의 말을 나에게 전했다. 사실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다. 년초나 중반까지는 희망과 재미로라도 나갔는데, 이제 그마저도 귀찮다. 매번 소개팅 나갈 때마다 입는 옷과 카페 또는 술집에 가서 어색한 인사와 메뉴 주문, 자리에 앉아 아이컨택을 하며, 상대에 대한 호구조사를 시작-조사-완료라는 단계를 거치는 일이라 생각된다. 집위치와 직장위치를 서로 공유하고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에 대해 찾아보고 연락하는 것 또한 사실 귀찮다. 어느저도 횟수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그냥 갔던 곳으로 가기도 한다. 만나기 전부터 감정을 소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러는 편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번호를 받았지만 연락을 오래하기도 좋지 않기에 만나기 이틀 전 카톡을 보내고 약속을 잡았다. 우리 집에서 대략 2~3km 부근에 사는듯 보였다. 대부분 물어보면 무슨동이라고 하기 때문에 사실 오차가 크긴 하지만 세세하게 묻기에도 이상하니 대충 그 부근을 물색해보는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너무 집 근처에서 볼 수 없으니 약간 떨어진 번화가로 장소를 찾았다. 체인이지만 넓고 사람이 적은 카페가 1순위이다. 스벅같은 곳에서도 2~3번 했었는데 주변 테이블과 너무 가깝고 말소리도 서로 들리지 않아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와는 주말 저녁 6시 가장 최적의 장소에 부합되는 카페베네에서 보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카페보다도 호프집에서 맥주나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배도 채우고 1차로 끝! 하는게 사실 편하고, 부담없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소개팅에 술 마시는 경우는 3:7인듯 했다. 술이 들어가는 순간 상대도 나도 서로에 대한 호감이 -200% ~ +200%의 오차를 보일 수 있지만 대부분 다음날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약속시간 1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뒹굴다 샤워를 하고 나갔다. 차를 가져갈까 걸어갈까 고민하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걸어가기로 했다. 혹여나 늦을까봐 걸음을 재촉했더니 10분 전쯤 카페에 도착했다.
"저는 카페에 도착했어요~ 어디세요?"라고 메세지를 보내니 "거의 다 왔어요?라고 답장이 왔다. 하지만 10분쯤 기다리다 날이 추워 카페 안에 들어가 5분쯤 앉아있으니 커다란 그녀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검정 힐에 검정 스타킹, 두꺼운 재질의 흰색과 검정 체크무늬 원피스에 작은 가방을 메고있었다. 힐을 신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키가 커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인물은 듣던대로 그저 그랬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앉은 키가 나보다 커보였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팔을 테이블에 기댄체 주로 말을 했다. 자꾸 어깨와 팔뚝 사이에 헐렁해진 원피스에 시선이 갔다. 상체가 나보다 더 큰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넓이는 내가 더 넓지만 그 두께감이 나에 비해 1.5배 되는듯 보였다. 이미 난 올 여름 그보다 더 거대하신 분을 만난 경험이 있어서인지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예전같았으면 처음부터 오늘만 보고 말아야지 했는데 또 호기심이 돋았다. 말하는 도중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 하는데 반쯤 잠긴 눈이었다. 얇은 눈꺼플에 잔주름이 많은 편이었고 눈 주변이 어두웠다. 아마도 모니터나 핸드폰 액정을 많이 봐서 그럴 것 같아 물어보니 회사에서 일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다고 했다. 특히나 그녀의 눈동자가 반 이상 가려져 아이컨택을 계속하기엔 잠이 올 것 같아 중간중간 창밖 먼 곳을 응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 또한 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뜨려고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녀는 회사 이야기로 채웠다. 1시간가량 이야기 했는데 그녀의 회사이야기가 40분 이상 차지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 회사 직원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개개인의 인물까지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라는 고민도 잠시 했다. 자기의 생활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말하는 반면 나에게 딱히 질문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자신의 능력을 일적인 부분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질문을 던지면 한참을 말하는 스타일이었고, 단답을 원했던 질문에도 업무적인 절차와 과정 특이점까지 나에게 말해주었다. 일 때문에 몸에 배인 습관같았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이 많은듯 보였다. 저녁 시간을 넘겼기에 가볍게 맥주나 하자는 말에 그녀도 승락했고 근처 자주가던 치킨집에서 치맥을 하기로 했다.
밖에 나와서 그녀 옆에 서서 걷는데 역시 키가 고만고만 하다 오히려 그녀가 몸이 더 커서 커보이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나에겐 150대 중후반의 여성분이 맞다는 것을 세삼 다시 느꼈다. 치킨집까지 200m정도지만 신경써서 걷느라 2배는 더 걸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치킨집은 다행히 반정도 자리가 남아있어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주고
"드시고 싶은걸로 골라보세요"
"저는 치킨은 양념을 많이 먹어서요, 뼈 없는 걸루요!"
치킨은 뼈있는게 진리이지만 뼈없는 양념 치킨과 생맥 2잔을 시켰다. 주문 후 주변을 둘러보니 연령대가 다양했다. 20대부터 50대 아주머니까지 소개팅 커플은 우리밖에 없었다. 소개팅으로 어딘가를 가면 뭔가 모르게 어색해진다. 자주 갔던 치킨집임에도 불구하고 어색어색했다. 치킨집에 도착해서는 오히려 말이 중간에 자주 끊겼다. 1시간 넘게 이야기 해서인지 딱히 질문할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치킨이 나오고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는데 거침없었다. 치킨 한입에 맥주 한모금, 치킨에 이성을 잃어버렸는지 말 한마디 없이 흡입을 하고 있었다. 나를 의식하지 못하고 맥주를 크게 한모금 했다. 단번에 1/4은 마신듯 보였다. 섯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역시 체격이 나보다 큰 이이유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치킨집에서도 회사 이야기를 주로했다. 너무 많이 들었는지 나도 이제 질려서 더이상 회사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맥주 한잔을 비운 상태였고, 나는 반쯤 남아있어 그녀에게 한 잔 더 시켜주었다. 내가 장단 맞춰 마셨다면 많이 마셨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러기엔 그날 날씨가 추워서인지 맥주가 땡기지 않았다.
섯부르지만 그녀와 나는 먹는 스타일이 많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대식가였고, 나는 저녁엔 소식을 하기에 아마도 내가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거라 생각이 든었다. 그녀는 배가 찼는지 치킨 먹는 속도를 현저히 줄였다. 더 먹을 수 있어보였지만 그러기엔 원피스가 터질 것 처럼 보였다. 팔뚝도 배도 주름하나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안에 보정 속옷이나 배에 힘을 주고 있을거라 짐작되었다.
치킨을 계산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는
"다음에 제가 맛있는 밥 살게요!"라고했다. 그녀는 나에게 호감의 표시를 보이고 있었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먼저 에프터 신청을 받았다. 아닌가 올 해 처음인가? 기억이 이제는 가물가물 하다. 아마 올 해 처음일 것이다. 작년 이 맘 때도 다른 여성 분에게 "추어탕 좋아하세요? 다음에 제가 사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치킨집 작년 그녀가 처음 소개해서 간 곳인데, 친구와 단골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지금까지 그녀를 마주친 적은 없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기로 하고 그녀와 걸었다. 날씨가 추운지 그녀가 팔짱을 끼며 걷기에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내 자켓을 걸쳤다. 혹여나 내 자켓이 작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거의 딱 맞는 것 같아 조금은 놀랍고 슬펐다.
그녀가 말했던 집 위치와 다소 떨어진 부분이 그녀의 집이었고 집 골목 입구까지만 배웅을 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사는 집까지 가르쳐 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러했다. "즐거웠어요. 다음에 시간되면 또 뵈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 집으로 향하는데 먼저 카톡이 왔다. "저 집에 잘 들어 왔어요. 조심히 가세요" 매너가 좋았다. 대부분 여성분은 상대가 집에 갔는지 안갔는지 관심도 없었다. 내가 먼저 카톡해야 답장을 했다. 대부분은 호감이 있을경우 안부인사를 먼저 건넸고, 남자가 항상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늦기 때문에 보통은 그러했다. 다만 내가 아직 판단이 서질 못했다. 뭔가 싫지도 좋지도 않은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컸을거라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만나보면 알겠지 싶어 집에 가는길에도 카톡을 하며 조만간 보자고 했다. 이 전에 만났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가 나에게 이러한 행동을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기엔 그녀는 나이도 어리고 예뻤다. 씁슬한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뭔가 공허한 느낌이다. 2018년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는데, 그간 만났던 사람과 사겼던 사람 방금 만났던 그녀와 그리고 나, 생각이 많아지지는 않는데 뭔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 스스로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나 조차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사람을 급하게 만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눈을 너무 낮춘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개팅의 실패와 연예의 실패로 인해 올 해 하반기는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것 같다. 내년을 기약하며 나를 좀 더 좋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신시키고 싶다. 그러자고 집에가는 동안 생각하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