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사진의 그녀
뚜쟁이 할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구 만나는 사람 없지? 좋은 처자 있으니 한번 만나보소"
더 이상 이 할머니로부터 누군가를 소개 받기는 싫었다. 내 기준에선 정상적인 평범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차인 적도 있었지만 그 때는 7살 연하에 나보다 키가 더 큰 여성분 이였다. 나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이도 어린데 나랑 키가 비슷해... 나 같아도 그 남자 안 만났을 거 같다.
요즘은 카톡을 배우셨는지 문자가 아닌 카톡으로 전화번호와 이름이 왔다. 이렇게 올 해 첫 선자리가 또 시작 되는구나 한탄하며 번호를 저장하고 카톡을 실행해 본다. 친구 목록에 표시되지 않아 설정에서 '새로고침' 나보다 2살 연하이신 그 분 사진이 떴다. 프로필에 사진에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을 올린 것으로 보아 외모에 자신이 있거나 외향적인 분일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뭐 하나의 루틴처럼 히스토리를 하나씩 내려본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고 모든 사진은 보정 앱 로고가 찍혀 있으며, 턱을 돌려 깍았지만 한번 더 돌려깎기 한 것 처럼 세모인 부분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이쁠 것 같다. 기대를 전혀 1도 하지 않고 사진을 봤을 뿐인데 예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정이 심해서 싱크로율이 50%를 감안해도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성분 집 근처에서 주말에 보기로 했다. 답장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깔끔하게 약속은 잡힌 것 같다. 요일은 잡혔고 장소는 정해서 알려준다고 했기에 핸드폰으로 열심히 검색해서 가봤던 커피숍과 근처 프랜차이즈중에 어디가 괜찮으냐 물었고 여성분이 내가 가본 곳이 좋다고 하여 일요일 저녁 7시로 시간까지 정했다. 역시 소개팅 만날 약속은 말이 나왔을 때 바로 잡는게 속 편하다. 카톡을 오래하면 사실 관계가 성사될 확률이 크지만 한편으론 만나기도 전에 지치기도 하기에 만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나이가 들수록 더 편한 것 같다. 이 것도 나이에 따라 만나기 전에 카톡 횟수는 어릴수록 많고 나이들수록 만날 약속만 잡는 거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카톡을 하면서도 피로를 느낄 수 있기에 그런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여성분에게 카톡이 왔다. 내일 저녁으로 일자를 바꾸면 안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주말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기에 알겠다고 했다. 혹시 몰라 “내일 저녁 7시”인지 재확인하고 나서 주말 잘 보내시라는 카톡으로 마무리 했다. 이 여성분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듯 보인다. 프로필을 볼 때마다 항상 업데이트 표시와 히스토리가 매번 바뀌어있다. 프로필을 나도 한 때 자주바꾸긴 했지만 이 분은 히스토리까지 전체적으로 업데이트 하는 것으로 보아 나를 능가하시는 것 같다. 내가 최근에 바꾼게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2달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프로필을 자주 바꾼다는 뜻은 자존감이 낮거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아마 이분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토요일 저녁 차가 막힐 거 같아 1시간 30분 전에 출발 했음에도 10분 전에 카페에 도착했다. 그냥 중간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나? 손에서는 땀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하고 주차할 곳은 없어서 뺑뺑 돌다보니 7시, 다행히 나가는 차가 있어서 카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부랴부랴 카페로 올라가서 둘러보니 여성분 혼자 있는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카톡으로 “저는 도착했어오 도착하시면 연락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리는데 답장도 안오고 사람도 안오고 이건 뭐지 싶은 순간 카톡이 왔다.
“내일 아니었어요?”
“어 죄송해요 카톡 다시 읽어보니 제가 잘못 말씀드렸네요.”
“제가 지금 친구들 만나러 멀리 와있어서 오늘 못 볼 거 같은데 어쩌죠ㅠㅠ 정말 죄송해요”
뭐 대략 이런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깨톡깨톡거렸다. 짜증이 밀려오고 도대체 이 여성분은 정신머리를 어디에 두고 사시는지 싶기도 하고, 내가 준비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쏟은 시간은 무엇? 진심 멘붕이 왔다. 이 근처에 친구녀석도 없는데 그래서였을까? 더 짜증이 났다. 만날 사람이 없었기에 더 그랬나 보다. 심호흡을 하고 괜찮다고 카톡을 보냈다. 속으론 짜증이 났지만 일자와 요일까지 같이 체크할 걸 이라는 자책을 하고 호흡을 10번 정도 한 후에 내일 다시 이 시간에 보자고 했다.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엄마와 어디를 가야되서 8시 전에 가봐야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선자리를 몰아서 보나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 또 이 먼 거리를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30분가량 만나러 와야하나 싶었다.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달달한 카페모카에 휘핑을 얹어달라고 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인지 카페에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마침 거리가 잘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리가 있어 그곳에 앉아 커피를 쓸쓸히 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커플이거나 중년부부 모임, 남남, 녀녀 커플이었다. 혼자 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렇게 씁쓸할 때가 있나 싶었다. 커피를 자리에 가져와 마셔보니 카페모카가 소맥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창가를 보며 멍때리다 사람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기에 느껴지는 시선도 싫고 혼자 오래 앉아있기 궁상맞아 집으로 향했다.
일요일 당일 차 타고 가는 것도 스트레스라 지하철도 한가하겠다 싶어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마침 카페도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았기에 다른 방식으로 가고 싶었다. 운전하고 갈 경우에 만나기도 전에 스트레스가 쌓일 것만 같았다. 약속도 펑크내고 집도 가까우니 미안하면 밥이라도 산다고 하거나 커피라도 산다고 하는데 어차피 이 여성분은 30분만 있다가 약속 때문에 가셔야 하는 분이기에 정말 아무 생각도 미련도 없이 카페로 향했다.
카페 입구에 도착 했을 때 카톡이 왔다. 도착 했으니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하기에도 15초면 볼 수 있을 것 같아 답장을 하지 않고 바로 올라갔다. 여성분의 첫 인상은 착해보였다. 사진과 싱크로율은 예상했던 것처럼 50%정도 되는 것 같았고, 키는 나보다 10센치 적도 적은 것 같아서 대체적으로 괜찮다라는 느낌이었다. 이야기가 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간의 과정을 봤을 때 이미 에라였다. 턱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절이 가능한 보정 프로그램으로 뭉개지지 않을 정도로 줄인 것 같았다. 실제로 봤을 땐 갸름하니 괜찮았다.
여성분에게 가볍게 인사를 후 서로 메뉴를 고르고 커피값은 내가 계산했다. 미안해서 여성분이 할 줄 알았는데… 기대를 그래도 조금은 했는데 작은 미련은 버리기로했다. 계산을 하고 뒤를 보니 여성분은 저 멀리 빈 테이블로 가고 있었다. 진동벨을 들고 여성분이 향한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가볍게 자기 소개하니 커피가 나왔다. 내가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가방에서 팩트를 꺼내 화장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휴지를 테이블에 두고 서빙하듯 음료를 셋팅했다. 커피를 한모금씩 하고 다시 본격적인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하는 일과 형제관계, 취미나 인생에서 추구하는 스타일등 몇가지 물어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혹시나 싶어 몇시쯤 가셔야 하냐고 물으니 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30분 전에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5분 남았다. 이런 선은 처음이었다. 고작 25분 대화한 것 뿐인데 나도 모르게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그 때부터 시계에 자꾸 눈이 가기에 여성분이 괜찮다며, 늦게 출발해도 된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쫓기고 있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선 본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은 거리가 생각나지가 않았다. 시험을 보는데 시간이 없어서 객관식 찍는 기분이랄까? 내 성격이 시간 약속에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결국엔 내가 3번정도 말한 후에 여성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35분가량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에프터가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헤어진 후 카톡을 보면 답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서 가라고 보채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 온 것 또한 그 여성분이었기에 나를 탓할 건 아닌 것 같았다. 여성분을 주차장까지 배웅한 후 30분 후에 카톡을 보냈다. 다음에 밥먹자는 내용으로~ 답장은 그래요😃 이런 이모티콘과 같이 왔다.
그 이후 나는 카톡하지 않았다. 만나서는 괜찮았지만 만나는 과정과 헤어진 그 이유가 너무 큰 마이너스로 다가온 것 같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만나서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면 저녁을 먹고 다음에 영화까지 보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을 거 같은데 그 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였다. 그 짧은 답장과 이모티콘이 부정보다는 긍정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 여성분의 속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긍정과 부정 애매함 계중에 무엇이었을까? 뚜쟁이 할머니로 들은 뒤늦은 답변은 긍적적이었다고 했지만 채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그랬던 것 같다. 그간 할머니를 겪었을 때 피드백이 확실하셨으니까 말이다.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맞다. 수십년을 살고도 그 사람을 모르겠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불과 30분 만나서 무엇을 알겠나? 그렇기게 그 만나는 과정과 그 이후 행동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둘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너무 큰 의미를 두어서도 안 되긴 하지만 기회를 갖는 것 조차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긍정적으로 풀어서 여자분이 맘에 든다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보면 결과가 좋게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기엔 내 그릇이 아직은 작았거나 경험이 부족했던 거 같다. 사실 이런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연타로 당한적은 없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2단 콤보를 넘어서 3단 콤보를 당할지도 모르니 좀 더 여유를 갖는 것도 노력해야겠다. 좀 더 긍정적으로 사람을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