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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

휴가 1일차.

무뎌지지 않는 연습 2016. 12. 19. 12:08

휴가 첫 날이 시작되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싶다. 늦잠을 잔들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평소 출근하던 시간과 동일하게 씻는다. 겨울이라 그런지 눈은 점점 더 떠지지 않고, 몸은 계속해서 무거워진다. 지난주까지 홍삼을 눈 뜨지마자 먹는동안 그나마 체력을 유지해 주었던가 싶다. 지난주와 다르게 이번주 아침은 급격히 떨어진 온도만큼 내 체력도 그러다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평소대로 밥을 먹고 전기기사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린다. 3주전 검침원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고 저녁에 집에가서 확인해 보니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검침기가 보였다. 차마 끌어당겨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기라는게 잘못 만지는 순간 훅 가는 거다. 동네 아저씨중에 한전에 다니다 감전으로 팔목이 잘리고 내상을 심하게 입어 2년 남짓 살다가 돌아가신 아저씨가 문뜩 생각났기 때문이다. 손주 과자사러 간다고 팔에 대야 손잡이를 끼고 다니셨었는데 그 모습이 눈에 아직 선하다. 한달이 다되갈 무렵 수리기사분에게 전화가 왔고 마침 내일 휴가이니 오전에 와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옆집에 새로 이사를 온다며 보수공사를 하다 우리집과 연결된 전기선을 심하게 끌어당기는 바람에 우리집 벽에 붙어있던 전압기가 떨어져 나갔다. 하마터면 집에 들어왔을 때 전기가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전기는 잘 돌고 있었다. 

 오랜기간 쉬는만큼 눈에 거슬리던 것들을 먼저 처리하고 싶어 손빨래 할 것들을 큰 대야에 중성세제를 풀에 담가놓고 청소기를 돌렸다. 내 방을 끝내고 부엌을 시작할 무렵 기사분이 지금 가도 되겠냐며 전화가 걸려왔고 3분만에 오셨다. 덕분에 오후에 나갈 수 있겠다 생각한다. 집안에 검침기가 있는 것 보다 옥외에 있는게 검침원 분도 편하다 하시니 밖에다 달아주신다고 한다. 덕분에 빨래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청소에 매진한다. 

 매주 청소기라도 돌리고 하다못해 한달에 한번 걸레질이라도 하자라고 했던 나의 다짐은 매주매주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이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말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이 집을 나서기 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주말에 청소좀 해둘걸" 이런 생각 자체가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되기에 그런 생각이 두어번 들면 처리해야 속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도 모레도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나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까지 매주 청소를 했었다는게 세삼 신기하기까지 하다.

 전기 공사는 30분안에 끝났다. 딱히 고생하셨는데 드릴건 없고 몽쉘통통 3개를 가져다 어려보이는 직원에게 주었다. 대략 고등학교를 갓졸업하거나 1년 밖에 되지 않은 신입이라 보여진다. 내가 청소를 하는동안 꾸짖는 소리를 듣는걸 보니 내 사회 초년 모습도 생각나고 나보다 더 어린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로 보이기에 더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길을 계속 해 나갈경우 안정적인 직장과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것으로 생각되기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어릴 때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그 당시에는 보지 못하는게 당연할 수있지만 보았더라면 주위 많은 친구들의 삶이 달라졌을텐데 라는 생각을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거의 모든 친구가 했었다. 고3 취업 시즌 때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에 입사해놓고 대학을 가겠다고 나왔으니 지금 다니는 직장들을 생각해 보면 많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청소를 마무리 하고 빨래를 빨기 시작한다. 주변 친구들중 손빨래를 하는 남자 사람은 내가 유일무의 하다. 그냥 세탁기에 돌리거나 부모님이 해주시거나 둘중 하나다. 나도 종종 속옷들을 세탁기에 돌리기도 하지만 손세탁 했을 때와 세탁기 돌렸을 때 옷들을 비교해 보면 세탁기에 돌릴경우 금세 늘어나고 보풀이 일어나며, 먼지가 어마무시하게 붙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출복과 속옷은 손빨래 나머지 집에서 입는 옷과 수건은 세탁기로 구분지어 빨래한다. 겨울철에는 옷이 두껍기 때문에 더 벅차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세탁기까지 밖에 있어 고무장갑 없이 빨래 하다간 손이 남아나질 않는다. 거기다 겨울옷은 탈수를 2번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경우 헹궈도 헹궈도 계속해서 탁한물이 나오기 때문에 중성세제에 담궈놓고 한번 조물조물 해준 후 헹구고 탈수하고 다시 헹구고 섬유 유연제에 잠시 담궈놨다 탈수해서 널어야 한다. 대략 빨래를 30분 담궈놓고 세탁 20분 해서 한시간 가량 걸리는듯하다. 하~ 세탁기가 드럼세탁기나 미니 세탁기가 있었더라면 이러고 있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문뜩문뜩 하기도 한다.

 단독 주택에 혼자 살다보니 손가는 곳도 청소 해야할 곳도 많다. 그렇게 전기, 빨래, 청소를 마무리 하고보니 점심시간이다. 신속히 라면을 끓여 먹고 나갈 준비를 한다. 근데 어딜 가지? 카페에 갈까? 도서관에 갈까? 마침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지 않은 책도 있겠다. 마음도 심숭생숭 하겠다. 도서관에 들르기로 한다. 마음이 어수선 할 때는 책, 산책, 등산, 멍 때리기중 하나가 도움이 된다. 그리하여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열심히 읽어 나갔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 셀러에 멘부커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열심히 읽어 내려간다. 최근에 공원을 산책 하면서 했었던 생각이 있다. 내가 나무나 새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내가 모든 자연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전에 읽었던 제 3인류에서 지구와 이야기 하는 모습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멋진 일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이다. 주인공 영혜가 내 손에서 뿌리가 자라 내 몸에 서 꽃이 피어나 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작가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혜의 누나가 새벽 마을 뒷산에 오르는 것 마저도 한번 시도해 볼까하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이것들 대부분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내가 느꼈던 생각들이었기에 더 흥미진진하게 책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니 책 표지 색과 읽고난 후 마음 가짐의 색이 같음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인 여섯시다. 내가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휴가를 근무처럼 보내고 있는 것인지 혼돈된다. 뭐 있나 평소대로 퇴근 후 하던 것 처럼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옴긴다. 그렇게 내 휴가의 첫번째 날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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