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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무표정한 그녀

무표정한 그녀 4

무뎌지지 않는 연습 2018. 9. 4. 00:39

만나고 처음으로 하루 건너 뛰었다. 그녀가 쉬는 날이었지만 친구와 미리 약속을 해두었고 매일 보는 것 또한 좋지 않음을 알기에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주 보면 당연히 더 가까워 지고 호감이 더 생길 수 있지만, 반대일 수 있으니 밸런스를 맞추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체력도 후달려 마냥 20대일 것이라 생각하는 30대 들은 관리가 꼭 필요한 시기 같다. 서로 다른 패턴으로 살았기에 맞추는 것에 대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급할 건 없었다. 이전에 그녀는 일주일에 2~3번 보는게 좋겠다 하였고, 나도 거기에 동의 했다. 그렇게 각자의 공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첫 날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이브닝 근무를 시작하는 첫 날이다. 어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기로 했다. 물론 그녀에게는 퇴근 했다고 말하였다. 공부한다고 말하면 상대가 너무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있고, 나 또한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일 좀 더 한다거나 책 보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결정장애가 있는지 메뉴를 2가지로 한정지어 놓고도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 했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기까지도 고민을 했다. 늦은 시각에 가서인지 첫번째 타겟을 정했던 매장을 지나가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바로 패스하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과 우리만 먹기에도 뻘줌하니까 말이다. 알바가 3명이나 테이블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닦고 있었다. 또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옴기려 하는데 저 멀리서 담배 연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냄새도 싫고 그녀의 손을 잡고 반대편 도로로 건넜다. 이제는 손 잡는 건 딱히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가 됐다.
 지난번 만났을 때 보다 오늘은 복장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했다. 호피무늬 치마에 검정 라운드 티를 입었다. 화장도 신경써서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옷차림에 따라 역시 너무 달라보였다. 내가 지난 번에 본 그녀는 누구였나 싶었다. 그때의 그 고민이 일순 사라지는 복장이었다.
 식당을 못찾아 한바퀴 돌긴 했지만 2번째 간 식당도 손님이 한팀밖에 없었다. 선택권은 없었고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이곳 당골이어서 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열심히 검색 후 처음 가보는 매장들만 골라서 나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가본 곳을 왜 가냐는 그런 답변이었다. 나는 가는 곳을 주로 가는 편인데 그녀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마다 여기 뭐가 맛있고 여긴 뭐가 맛있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생긴 가게들을 찾아 다니는 편이기 때문이다. 찜닭 2인분을 시키고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는 내 말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작게 말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녀도 잘 듣는 편인 아닌 것 같았다. 가게 손님이 없어서인지 음악소리도 크게 틀어놔 더 들리지 않았다. 
 그녀와 밥을 먹는 첫자리였기에 서로 닭 뼈를 탐닉하며 살코기만을 열심히 입안으로 넣고 있었다. 종종 말을 하긴 했지만 둘 다 배가 고프기에 먹기만 했다. 그녀는 주로 당면을 먹었고 나는 퍽퍽살을 먹었다. 가는 당면이 아닌 두꺼운 당면이라 씹는 식감이 더 좋았다. 그녀는 닭보다 당면이 더 맛있다고 했다. 나는 당면이 제일 싼 음식인데 고기를 먹어야지 라고 타박했고 그녀는 맛있는걸 어쩌냐며 나를 바라본다. 맛있음은 된거다 라고 맞짱구 쳐주며 또 다시 먹기 시작했다. 먹는 도중 그녀가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며, 가방을 뒤졌고, 차에서 핸드폰을 썼다는 말에 차에 있을 거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러지가 못했다. 약간 얼 빠진듯한 표정있기에 내가 갔다올테니 먹고 있으라 했다. 차가 좀 멀리 있긴 했지만 그 표정이라면 다녀오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이든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여름 늦은 시각이지만 땀이 흘렀다. 핸드폰은 보조석에 있었고 케이스가 검정색이라 눈에 잘 띄지 안았다.
 가게에 다시 가보니 있던 손님은 나가고 새로운 팀이 2팀이나 와있었다. 역시 술집 많은 곳 답게 2차를 하러 온듯 보였다. 한팀은 남자7에 여자1명 다른 팀은 여자 2명에 남자 1명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많아지니 말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찜닭은 국물도 자작하니 적당히 맵고 느끼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도 고기만 먹기엔 그래서 복음밥을 주문했다. 많이 먹을줄 알았던 그녀는 생각보다 입이 짧았고 닭고기는 내가 70프로 먹은듯 했다. 밥도 80% 내가 먹었다. 나보고 입 짧을 거라고 했던 그녀도 생각보다 내가 많이 먹는다고 했다. 나는 반대로 많이 먹을줄 알았더니 짧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더 고팠나 보다. 그녀는 저녁에 밥을 먹었다고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카페에 가봐야 둘 다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다른 음료가 땡기지도 않기에 차에서 이야기 좀 하다가 가자고 했다. 아마도 이날 차에서의 주제는 자동차, 노래, 친구였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어제 만났던 친구들에 대해 호기심을 표했다. 내가 말하다가도 주제가 좀 벗어나면 그녀는 자기의 질문의 답을 들을 때 까지 물어봤다.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인듯 보인다. 호기심도 많고 가십거리를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 자동차는 나보고 왜 흰색을 샀냐며 택시갔다고 뭐라고 했다. 회색을 샀어야지 흰색을 샀다고 하는 순간 나는 이개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그녀 부모님이 타는 차가 회색이라는 말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흰색은 택시들이 타는 거라며 회색을 했어야지 라고 구박하는데 그냥 뭔가 싶었다. 결국 집에 가는길에 택시가 흰색도 있고 회색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사과하긴 했지만 말이다.
 차를 산지 얼마 안돼 USB에 노래를 많이 담지 못했다. 이것도 유투브에서 음원을 다운 받아서 급하게 채워 넣은 노래들이었다. 그녀의 성격이 말하며 잘 웃긴 했지만 기본 성격은 차분하다는 것을 노래 취향에서 알 수 있었다. 주로 90년대 발라드 음악을 좋아했고 우울하거나 이별 노래를 즐겨듣는다 했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신나는 노래나 걸그룹 노래도 잘 들었기에 취향이 다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3교대 근무를 해서인지 노래 제목이나 무언가를 틀리게 말하곤 했는데 "자우림에 스물다섯 스물여섯"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는 빵 터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째려보긴 했지만 나는 다시 "스물다섯 스물하나"라고 정정해 주었다. 누군가 무엇을 틀리게 말했을 때 교정해주는 건 좋지만 기분 좋게 해야한다는 것을 순간 뜨끔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시간은 12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늦게 만나 늦은 저녁을 먹고 잠깐 이야기 했는데 벌서 잘 시간이 넘은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잠이 오지도 않고, 집에 가기도 싫은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노래를 가만히 들었다. 그녀가 먼저 우리 이제 갈까요? 라고 했고 나는 이 노래만 끝나면 가자고 했다. 
 그녀의 아파트 앞에 주차를 하고 그녀가 사는 동 현관까지 바래다 주었다. 이제는 그녀도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뒤돌아 본다. 아마도 관계가 더 발전 된다면 헤어질 때 다른 무언가를 하겠지? 하지만 마음은 벌써 하고 있었다. 포옹이든 키스든 무엇이든지 말이다. 연애를 너무 쉬었나 보다 거의 1년 만인 것 같았다. 마음을 꾹꾹 누르며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은 집에가는 길에 그녀가 먼저 카톡을 보내왔다. 아마도 나에게 점점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주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여자가 남자에게 빠지기 까지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 보다 짧을수도 더 길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금사빠인 나는 일주일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도 똑같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기에 문제가 될 무언가가 발견 된다면 누군가는 상대에게 이별을 고할 것이다. 그래서 더 빨리 서두르고 성급해지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좋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 사람의 본성과 마음이 아닌 조건만 보고 하는 결혼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어떤 여성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벌써부터 이런 걸 물어보나 싶기도 했지만 말 못할 이유도 없기에 다 말해주었다. 무언가 벗겨진 기분이 살짝 들긴 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거라면 다 오픈하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하기에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막상 집에 도착해 잠을 들려고 보니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피로는 깊었고 다음부터는 더 일찍 들어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의 안부 인사 주고 받고 그렇게 4번째 만남 6번째 날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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