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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나

시제 지내러 가는 길.

무뎌지지 않는 연습 2017. 11. 27. 11:38


1년에 한 번 이맘 때쯤 시제를 모시러 간다.

일요일 시제가 있다는 말을 지난주에 들었으니 나도 그 날은 갈 준비를 한다. 사실 주말에 약속이 많아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면 아마 가지 않았을 것 같긴 한데 어쩌다 보니 군대 전역 이후 매년 다니고 있다. 시골에 계신 분들이 대략 10시쯤 출발 하시니 우리는 9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운전은 내가 해도 될 법 한데 아직까지 70 중반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이미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신다. 특별히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을 경우에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하려고 하신다. 백내장이 있을경우 시각 손실이 발생한다 하여 염려가 되지만 한편으론 나 없을 때 운전을 하시기 때문에 운전에 지장이 없으신지 확인하는 계기도 되긴 한다. 아직까진 운전을 잘 하시는 편이다.

 가는 길에 작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야하기 때문에 만날 장소에 내려 나는 뒷자석으로 옴겨 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학교를 같이 들어갔기에 사실 친구나 다름 없지만 항렬이 다르기 때문에 어렸을 적 차별과 고생좀 하셨을 것 같다. 이미 그 일화에 대해서는 술 드신 아버지 입에서 많이 들었다. 젓 배를 곯아 나는 밥을 많이 못 먹는데 작은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2배는 더 드셨다고 했다. 간난아이 때 젓을 못먹어서 한창 나이 때 먹는 양이 적어 먹고 싶어도 못먹었다 뭐 이런 말씀이신데 벌써 수십 번 들은듯 하다. 지금은 두분 다 70을 넘으셔서 그런지 몸에 좋은 약초가 있는 곳에 아버지 차를 타고 잘 다니신다. 최근에는 옻 나무를 배어 오신듯 한데 그 후일담이 한참이다.

 아버지는 팔에 옻이 올라 연고를 바른 후 괜찮아 지셨다 하고, 작은할아버지는 얼굴부터 몸에 퍼져서 일주일간 고생을 하셨다 한다. 할아버지 말을 빌려보면 옻을 타게 되면 간지러워 혼쭐이 나긴 하지만 가라 앉고 나면 피부가 오히려 깨끗해 진다고 하신다. 자신은 되도록 옻을 타더라도 약은 안드시려고 노력하신단다. 옻이 몸에 좋기 때문에 체질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효능을 보신 분들은 꾸준하게 섭취를 하시는듯 하다. 그 이후에도 꾸지뽕 열매, 감 잎, 쇠무릎 뿌리등등 효소가 좋은지 술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아버지가 지금 연세까지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일도 많이 하시지만 좋은 담금주를 많이 드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시골 작은아버지 댁에 도착해 막둥이 작은아버지 내외를 태우고 바로 시제 모시는 장소로 향했다. 여느 때보다 좀 더 일찍 출발하신듯 싶다. 시골집에서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하긴 하지만 차가 뒤틀려서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도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산길 도로 없었다면 짐을 가지고 200미터 가량 30도 경사로를 올라야 했겠지만 차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가는 도중 저 멀리서 불피우는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이미 어느정도 준비가 끝났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착해보니 시제상은 80%가량 준비되어 있고 대략 20명의 사람이 온듯하다. 내가 막내인줄 알았는데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한 남자애가 쭈뼛쭈뼛 서있다. 나도 저랬었나 싶지만 벌써 12년이나 지났다. 저 친구가 날 보면 나이많은 삼촌으로 보겠지?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 나이 많은 삼촌들은 벌써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상 차리는 것을 돕고 있다. 끼어들기고 그렇다고 빠지기도 애매한 포지션 피워놓은 불 옆에 조용히 쭈구리고 앉아 정리되기를 기다린다.

 시제가 시작되고 보조를 먼저 뽑게 된다. 지금껏 내가 10년 가까이 했지만 새로운 형님들중 자주 와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기에 나는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대략 어떻게 해야할지 몸이 기억한다. 첫 잔에 술을 따르고, 그 다음 술 잔부터 술을 올리고 나면 젓가락을 3번 탕탕탕 치며 음식 위에 사람이 먹는 것 처럼 방향을 맞추어 올려 놓고, 복개를 열고, 수저를 3번에 나눠서 꼽고 수저는 우측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마지막은 복개에 술을 따라 잔에 3번 나눠 붓고 마지막엔 국을 내리고 물을 올려 복개를 닫고 수저는 물 그릇에 담궈 놓는다. 뭐 대략 이렇게 흘러가는데 처음 하게 될 경우 뒤에서 훈수 두는 사람은 많고 첨이라 당황스럽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혼동된다. 오늘따라 뒤에서 보고 있으니 다 보이지만 막상 또 내가하면 혼동된다. 시제가 끝남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손이 일제히 유자로 향한다. 향이 좋기 때문에 차에 놔두려고 잽싸게들 가져가신다. 술을 좋아하거나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자리에 시제에 썼던 술을 한 잔씩 드신다. 복음을 해야 운을 받는다고 하시니 나도 빠지지 않고 조용히 있다 어른들 빠지실 때 한 잔을 입 속에 털어 넣는다.

 보통 시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흩어지기 때문에 서둘러 차려놓은 음식들을 정리한다. 나이든 할머니 분들은 싸 주실 음식을 봉지에 나눠 담으시고, 나 같은 경우에는 제사 음식중 밥을 비빌 수 있는 재료들을 모아서 가져다 드리면서 정리를 한다. 종종 피워놓은 모닥불로 다시 가져가 밥을 열심히 비비기도 하는데 뜨거운 모닥불에 국자로 밥을 비빌라 치면 이마가 씨벌겋게 다라올라 땀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 낙지, 돼지고기,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김치, 두부등을 넣고 밥을 넣고 비벼주면 요게 생각보다 꿀 맛이다. 양이 너무 많아 잘 익지 않긴 하지만 누구 하나 맛없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그런 맛이다. 그렇게 후딱 밥을 해치우고 커피를 한 잔씩 하다 보면 바쁜 사람들부터 갈 채비를 한다. 대략 시제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2시간정도 걸리는듯 하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준비를 하긴 하지만 음식 장만하는 집이 가장 힘들 수 밖에 없다. 음식이 많네 적네 좋네 나쁘네등 뒷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신경써서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끝이 나면 뭔가 속이 시원해진다. 1년중 행사를 끝내서 그런듯 싶다.

 우리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작은할아버지 모두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시제는 앞으로도 몇십년 더 할 것 같지만 문중 장손 어르신 자식들은 지금껏 본적이 없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이 풍습을 이어갈지는 모르겠다. 집안에서 남자가 있으면 장손이 되고 더 나아가 집안 장손이 되고 거기서 또 더 나아가면 문중 장손이 된다. 종가집 맏며느리 이름만 들어도 요즘 여자분들은 혀를 내두를 테지만 내가 생각해도 여느 다른 집보다는 힘들 것 같긴하다. 하지만 희한하게 내가 본 문중 장손들은 다 잘 산다는 특이점 또한 있다.

 잠시 작은아버지 댁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향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게 변한 하늘과 하루 걸러 하루 온도차가 7~8씩 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맑기만 했었던 하늘인데 내가 할아버지가 될 때면 맑은 하늘을 1년에 한 두번 밖에 보지 못할날이 올지도 모른다. 집에 다다르니 45층 아파트가 눈에 띈다 기껏해야 20층 아파트였는데 이제는 40층 이상 아파트가 눈에 띈다. 시대가 변한다고 아버지 눈에는 예전 도심이 논 밭이었는데 요즘은 외각이 논밭에서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있다. 도시는 점점 커져만 가는데 인구는 점점 줄고만 있어 3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공기가 나빠져 지하로 만들어진 아파트가 생기고 100층 높이의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 많든 유해한 공기를 다시 인간이 정화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악순환의 반복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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